SHOW, SHOW, SHOW
피렌체에서 열린 피티 워모부터 2024년 가을/겨울 시즌의 밀란과 파리 남성복 패션위크를 거쳐 2024년 봄/여름 시즌의 오트 쿠튀르에 이르기까지. 1월, 패션 피드를 숨 막히게 채운 100개가 넘는 패션쇼를 <데이즈드> 에디터 9인이 자신만의 줏대와 관점으로 주경야독한 끝에 써 내려간 리뷰 쇼, 쇼, 쇼!
Text Ahn Doohyun, Hyun Junghwan, Keem Hyobeen, Kwon Sohee, Lee Jiwon, Lee Seungyeon, Park Kiho, Park Soeun, Son Minkyung
Art Lee Sanghyeon
MAGLIANO
말리아노는 2024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페미니스트이자 레즈비언인 시인 파트리치아 카발리와 이탈리아 배우 안나 마그나니, 독일의 개념미술가 하네 다르보벤을 언급하며 중립적인 여성성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이분법적 고정관념으로부터 옷장을 해방시키자는 것.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을 서로 겹치는 요소로 취급하며 이분법적인 개념을 벗어난 유일한 디자이너’라고 설명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퀴어의 아이콘이라며 ‘레오나르도, 그는 우리 중 한 명입니다’라고 적은 그래픽을 선보였다. 인간의 어떤 고질적인 관점과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사회적 고정관념을 깨는 것. 루카 말리아노가 외치는 해방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채웠다. AHN DOOHYUN
계단이 있는데 오르지 않고 내려온다. 수직에서 수평이다. 1980년대 이탈리아 반체제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세심한 컷과 장난스러운 프린트, 대담한 테일러링으로 이른바 이탈리아 전통 스타일에 반기를 드는 이 브랜드의 이름은 말리아노다. 동명의 브랜드 디렉터 루카 말리아노는 교황의 직할 도시이자 세계 최초의 대학이 설립된, 부르주아의 도시 볼로냐에서 태어나 되레 반부르주아적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 그건 그의 성정체성과 비관습적 성향과 관련 있어 보인다. 말리아노는 줄곧 반대와 항의, 혼돈, 순응하지 않는 정신을 담아 컬렉션을 구성한다. 중요한 건 그 방식의 기저에 사랑과 친밀함이 깔려 있다는 사실. 그런 신념 앞에서 성별과 나이, 계급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KWON SOHEE
이건 연극이다. 모델들이 계단을 한 칸 한 칸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내려올 때 Oxhy의 미공개 음악이 흘러나오며 대비가 강조된다. 천천히 내려오는 걸음걸이, 점점 빨라지는 비트,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표정들을 보며 ‘아, 이건 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입장할 땐 혼자서, 퇴장할 때 다 같이, 무언가 위로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다 똑같다고. 다르지 않다고. 어쩌면 혼자가 아닌 우리일 수도. 결속력과 공동체에 대한 그의 이야기다. LEE JIWON
ACHILLES ION GABRIEL
2019년부터 캠퍼와 캠퍼랩의 디렉터를 맡고 있는 아킬레스 이온 가브리엘의 개인 브랜드다. 테일러링과 가죽, 카고, 데님이 적절히 섞인 이번 첫 컬렉션은 무엇보다 디렉터의 괴팍한 유머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슈즈 브랜드의 디렉터를 겸임하고 있는 그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든 룩에 비슷하게 날카롭고 메탈릭한 부츠를 매치했다는 점에 주목하면 좀 재밌다. 물론 옷을 입고 거니는 그 태도는 제각기 다르지만. 클래식이냐 스트리트냐, 여성복이냐 남성복이냐 논할 필요는 전혀 없을 것 같다. KWON SOHEE
길게 늘어진 벨트와 뒤로 숨긴 꽃다발. 평화와 고요함을 사랑하는 그가 완성한 반항적이면서도 구조적인 디자인. 얼마나 펑크하고, 얼마나 섬세한지. 젠더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아무도 꺾을 수 없는 그의 고집과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는 그의 믿음. 캠퍼랩에서도 볼 수 있었던 그의 시그너처 페인팅 레더와 송치, 그레이 블루 컬러까지. 컬렉션에서 선보인 부츠 팁에 적힌 문장 ‘Move Bitch’. 그리고 2012년부터 쉬지 않고 패션에 관한 열정 하나로 달려온 아킬레스 이온 가브리엘. 꽃다발은 그간의 열정에 보답하는,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찬사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AHN DOOHYUN
불길 속에서 “나 살아 있어”라며 당당히 걸어 나오는 외침. SON MINKYUNG
그는 자신을 신발 디자이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메이커라고 칭한다. 디자인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설계 과정을 이해하는 사람은 몇 안 된다며. 전주가 끝나가며 ‘Beep Beep You Sad F**k’가 흘러나온다. ‘I wish I could, but I don’t want to.’ 모델들이 앞으로 나와 회전할 때마다 스타일리스트한테 스타일링을 받지 않은 나는 이런 식으로 입어. 그래도 돼.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LEE JIWON
S.S DALEY
계속해서 이 소년이 변함없이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할 것이다. 멀쩡해 보이지만 어딘가 헝클어진 모습으로. PARK KIHO
해리 스타일스가 맥시 드레스와 슈트를 입은 채 <보그> 역사상 최초로 남성 단독 커버 모델을 장식했을 때, 젠더리스이거나 젠더 플루이드이거나 젠더 뉴트럴이거나 굳이 따져 묻지 않아도 뭐든 꼭 여성이니 남성이니 구분하는 시대는 이미 구닥다리 같았다. 남자의 치마를 보고 첨단이라 호들갑 떨기도 민망했다. 같은 해 해리 스타일스는 여봐란듯이 스티븐 스토키 달리라는 무명 디자이너의 졸업 작품 중 몇 가지를 입고 ‘Golden’ 뮤직비디오에 등장한다. 그러고는 올해 초 스티븐 스토키 달리의 S. S. 달리에 해리 스타일스가 직접 투자를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의 말마따나 “패션 산업은 최고의 풍자이자 최악의 풍자, 가장 매혹적인 비극이자 가장 매력적인 드라마다”라는 인식 아래 한없이 가볍고 나쁘다가도 웃고 좋을 수밖에 없는 스타일을 제시한다. KWON SOHEE
루이스 깁슨Louis Gibson이 제작한 추상으로 표현한 침대 프레임 조각품은 재활용 목재를 이용해 만들었으며 피렌체 현지에서 작업했다고 소개했다. 총 8개이고, 마치 기숙사의 공동생활 경험을 표현한 말 그대로 ‘엘리엇의 방’으로 제작됐다고 한다. 벙크베드를 연상시키며 기숙사의 멤버로 공간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쇼에 흘러나오는 드라이클리닝의 ‘Stumpwork’는 베스트 레코드 패키징으로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플레이리스트 제목은 전부 영국 문화 그 자체다. 이 둘의 조합이 어우러지면서 진정한 영국다움이 묻어난 듯하다. LEE JIWON
이번 쇼를 보며 영화 <솔트번>이 떠올랐다. 그러고는 펠릭스가 자신의 대저택에서 휴양을 즐기는 장면이 스쳐 지나가며 나는 올리버 퀵이 된 것처럼 쇼에 나오는 옷을 모두 내것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SON MINKYUNG
GUCCI
1994년에는 톰 포드, 2006년에는 프리다 지아니니, 2015년에는 알레산드로 미켈레, 2023년에는 사바토 데 사르노가 구찌의 헤리티지를 고유한 시선으로 새롭게 해석하며 구찌오 구찌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구찌는 지난 9월에 선보인 사바토 데 사르노의 첫 쇼 ‘미러링’ 버전을 올 1월에 새롭게 선보였다. 룩의 안감에도 본딩 레더를 사용한 것이 인상적이다. 실크 초커, 스카프, 크리스털 칼라와 베스트, 메탈 네크리스 같은 독특한 아이템을 적극 활용한 것이 특징. 마크 론슨Mark Ronson이 제작한 ‘Masculinity’ 사운드트랙으로 쇼의 아이덴티티를 높였다. LEE SEUNGYEON
사바토 데 사르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됐을 때, 그가 ‘다시’라는 뜻의 ‘앙코라Ancora’를 말할 때 그 역시 어떤 시절을 다시 꺼내 들고 열망하고 있음을 알았다. 낮은 허리선, 깊은 네크라인, 메탈릭 장식, 운명인지 우연인지 돌고 도는 구찌의 바이오그래피. 주목할 점은 노골적으로 타인에게 매력을 발산한 톰 포드와 달리, 사바토 데 사르노는 보다 그 자신이길 바라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나다움’이 시대정신으로 자리한 지금, 구찌가 다시금 섹시해 보인다면 그건 바로 사바토 데 사르노의 자기 확신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태도는 곧 스타일이니까. KWON SOHEE
사바토 데 사르노의 첫 번째 남성복 컬렉션이 밀란에서 공개됐다. 포멀한 디자인의 재킷은 테일러링이 스마트하게 되어 있으면서 가장자리를 깔끔히 처리했다. Hold my hand under the table. Shoulder to shoulder. 듬직해 보이면서 코트 안에 손을 넣은 모습들이 나에게 선을 긋는 모습이 아닌 비밀스럽게 다가가겠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언가 결심한 듯한 표정이 그들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주었다. 가방 색과 어우러진 가죽 장갑은 그야말로 chef’s kiss였다. 쇼 시작부터 끝까지 사랑을 열망하는 감정을 계속 전달했다. ‘Loveher’, ‘Masculinity’, ‘Late Night Feelings’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Ancora’까지. LEE JIWON
JORDANLUCA
호신용으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강렬한 스파이크 장식의 백은 룩에 펑크 무드를 한 방울 더해 만들었다. 오버사이즈 숄더 재킷과 드레스의 매치는 전복되는 느낌을 주며 컬렉션에 재미를 주었다. 이처럼 흐르는 실루엣의 드레스와 레더 소재의 조화뿐 아니라 데님과 슈트, 레더와 도트 무늬 등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의 조화가 컬렉션을 가득 채운다. LEE SEUNGYEON
처음 마주한 것은 신체 부위가 프린트된 헬륨 풍선이었다. 거대한 실루엣의 재킷과 레깅스의 조합, 퇴근 후 클럽으로 향하는 비즈니스맨, 하늘까지 닿을 만한 모히칸. 어떤 파티를 상상하든 그 이상.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기엔 이미 너무 충분하지 않나. AHN DOOHYUN
그치. 그치. 피곤에 절어 있는 나의 동년배들 참 멋있지! SON MINKYUNG
아티스트 도미닉 마이엇Dominic Myatt이 디자인한 1500개의 풍선이 손님 사이에 모였으며, 컬렉션의 파격적인 선언문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척 팔라닉Chuck Palahniuk의 소설 <Not Forever, But For Now>에서 인용한 내용을 활용했다. 깨지기 쉬운 것이 부서지면 모두가 긴장을 풀 수 있다. 헤어 스타일링을 담당한 앤서니 터너Anthony Turner가 조던루카의 룩을 완성해 주었다. 악동 같은 모습을 더해 줬달까. 1월 11일에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온 패션쇼 티저의 훅에 나도 걸렸다. 처음엔 풍선을 따라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데 영상을 보니 그 공간을 설명하고 싶어 한 듯하다. 그 안에 있는 메시지를. LEE JIWON
SIMON CRACKER
잠들기 직전 마법의 순간으로, 색은 물론 초점, 의식까지 흐려지는 순간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이런 환상적인 순간을 컬러로 포착해 컬렉션에 담아냈다. 모델들의 의상은 때로는 불투명하고 눈을 부릅떠도 희미하다. 옷과 귀, 목에 매달린 진주는 마치 창가에 비치는 달빛처럼 반짝인다. 몽환적인 사운드트랙에 귀를 기울이면 어느새 우리도 시몬 크래커의 숙면을 엿보게 된다. 정신없는 세상에 대한 소리 없는 외침. AHN DOOHYUN
셔링 가득한 원단을 크롭트 니트에 조합하고 바지의 벨트 선을 따라 입체감이 돋보이는 자투리 천을 더했다. 그러나 이 같은 키치한 요소 위에 전통적인 재킷 실루엣은 그대로 살려 두었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패션 DNA를 반영했음도 확인할 수 있다. LEE JIWON
필리포가 말한 “반란은 반드시 소음을 내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닌, 오히려 조용함과 반성에서 더 많이 나온다”는 것을 명심한다. 친절과 겸손을 겸비한 새로운 혁명을 목표로 아자, 아자! SON MINKYUNG
PRADA
미우치아 프라다가 패션이나 건축이 아닌 정치학을 전공했다는 점에서 그의 컬렉션은 다중적 함의를 지닌다고 믿는다. 가죽 상품으로 시작한 브랜드의 심벌이 가죽 가방이 아닌 낙하산이나 텐트 같은 군용품의 재료인 포코노 나일론으로 만든 ‘나일론 백’이라는 사실. 이 밖에 군복형 재킷과 미니멀 코트 등 값비싼 명품이지만 치장보다 실용에 가까운 아이템 구성. 미우치아 프라다의 프라다는 무엇보다 통념에서 벗어나며 나름의 혁신을 계속해 이뤄간다. 2020년 질샌더와 디올, 캘빈클라인을 섭렵한 라프 시몬스를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들인 것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이번 컬렉션 역시 겨울과 무관한
아이템과 팔레트로 또 한 번 상식을 깬다. 이는 예고된 일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특히 질샌더 시절 라프 시몬스가 브랜드의 시그너처인 미니멀리즘에 안주하지 않고 원색과 네온 컬러를 넘나들며 질샌더만의 우아함을 그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다는 점을 미뤄 볼 때 그런 라프 시몬스의 진보가 프라다에도 불고 있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무차별적 상식의 세계에서 프라다 같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되었을 때 중요한 건 어떻게 반응하냐다. 이번 시즌 갑작스레 등장한 수영모에 당황하지 않기를. KWON SOHEE
2021년 봄/여름 시즌을 맞아 라프 시몬스가 미우치아 프라다 여사와 손을 잡았다. 미우치아 프라다 여사는 여전히 자신만의 리듬을 유지하며 간결함과 절제를 키워드로 브랜드를 잘 이끌고 있고, 하우스 브랜드에 전례 없던 반항, 역동기 유스컬처의 큰 흐름을 이끌던 라프 시몬스가 생동감 넘치는 요소를 더한다. 이번에 비비드한 컬러의 수영모가 그런 의미였을 터. 이들의 컬렉션도 주목할 만하지만 이 둘이 선보이는 프라다 캠페인도, 과거 프라다의 파노라마도 반추해야 할 것이다. LEE JIWON
WHITE MOUNTAINEERING
목적지는 결코 장소가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 PARK KIHO
디자이너 아이자와 요스케가 2006년에 설립한 일본 브랜드. 그는 도쿄 다마 미술대학의 제품 및 텍스타일 디자인과를 나왔으며, 이후에 준야 와타나베를 사사하다 야외 활동에 대한 열정을 패션으로 전환했다. 팬데믹 기간 은둔 생활을 하던 목가적 산장에서 영감을 받아 고독과 예술적 성찰의 정점을 찍었다. 엘리엇 포터와 이시카와 나오키의 심오한 작품에서 정수를 끌어냈고, 그들은 산의 웅장함을 표현해 디자인에 영향을 미쳤다. 마나슬루의 오라가 담긴 이 컬렉션은 산의 아름다움과 정신을 반영하는 깊이감이 느껴지는 색상과 식물 패턴의 팔레트가 특징이다. LEE JIWON
SACAI
아베 치토세가 1999년에 설립한 일본 패션 브랜드. 그는 이세이 미야케를 보며 디자이너로서 꿈을 키웠고, 꼼데가르송의 준야 와타나베 밑에서 일했고, 컬러의 설립자이자 디자이너인 직장 동료 아베 준이치를 만나 부부가 되었다. 과장된 칼라가 달린 트렌치코트에 이어 칼라가 없는 트렌치코트 등 같은 실루엣을 기반으로 디테일을 변주한 아이템을 연달아 보여주는 방식으로 쇼를 진행했다. 특히 이번 컬렉션에서는 재킷의 다양한 디자인 변형이 돋보이는데, 사카이 특유의 곡선이 강조된 소매의 재킷이나 어깨가 치솟은 재킷 등 위트가 느껴지는 아우터웨어가 많이 등장했다. 니트와 울의 조화처럼 다양한 소재의 믹스 매치가 인상적이다. LEE SEUNGYEON
일상적인 옷차림과 고급 패션의 경계를 허무는 콘셉트를 여전히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반팔 티셔츠와 벌룬 셔츠의 레이어링 룩이 신선했다. SON MINKYUNG
통일성과 결속력을 상징하는 유니폼. 형태를 강조하는 단색 팔레트를 선택한 아베 치토세는 균일성에 초점을 맞췄다. 아티스트이자 스트리트 스케이터인 마크 곤잘레스와 협업한 배지를 통해 이를 드러냈다. 부츠는 제이엠 웨스통J.M. Weston과 듀오 협업을 진행했다. 사카이는 항상 다음 협업을 기대하게 한다. LEE JIWON
DOUBLET
더블렛은 디자이너 이노 마사유키와 아티스트이자 패턴 메이커인 무라카미 다카시가 2012년 설립한 브랜드로, 넷플릭스의 UI를 오마주한 공식 웹사이트부터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 선보인 설치미술까지 패션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른 브랜드와 사뭇 다르다. 이노 마사유키는 모드 가쿠엔에서 교육받은 후 미하라 야스히로에서 슈즈와 액세서리 핸들링을 하며 경험을 쌓았다. BoF 5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2018년에 LVMH 프라이즈 위너로 선정되었다. 그간 선보인 룩을 보면 펑크룩 같은 스타일도 많아 눈여겨보고 있었다. ‘카바레’가 이번 컬렉션의 주제였지만, 이노 마사유키는 평소처럼 재미보다는 의미 전달에 힘썼다. 샘플 제작 시행착오를 수만 번 거치기보다는 3D 프린터로 제작해 폐기되는 재료의 양을 줄였다. 카바레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다양한 인간상을 보여주며, 펑크룩과 캐주얼룩을 한데 아우른다. LEE SEUNGYEON
영화 <웜 바디스>의 주인공이 나와 깜짝 놀랐는데, 상의에 프린트된 아이돌처럼 보이는 동양 여자 때문에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이제 서양의 음지 남녀는 일본 애니가 아니라 아이돌로 영역을 옮겨 가는 걸까. SON MINKYUNG
쇼장 입구에선 ‘오타후쿠 소스’와 협업한 푸드 트럭에서 미니 오코노미야키를 제공하는 이색적인 경험도 선사했다. KEEM HYOBEEN
더블렛은 창립자이자 디자이너인 이노 마사유키가 창조한 아방가르드하고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일본 패션 브랜드다. 2012년 일본에서 시작됐으며, 예상치 못한 소재와 독창적인 건축 기술을 컬렉션에 접목한다. 더블렛은 데뷔하자마자 패션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노 마사유키는 2018년 LVMH 프라이즈 젊은 패션 디자이너상을 받으며 글로벌 패션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이번 컬렉션에선 일상생활에 활용되는 기발한 디자인을 많이 접할 수 있다. 낮잠부터 요가 연습까지 이번 패션위크에 유머러스한 바람을 불어넣어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컬렉션 룩 중 마음에 드는 것이 많았다. 9번은 색감에 미치고, 13번은 편안해 보이고, 23번은 타사 브랜드 로고를 낮잠으로 바꾼 위트가 돋보였다. 개구쟁이처럼 주변 사물에 위트를 더하는 마사유키 씨가 더 좋아졌다. LEE JIWON
RHUDE
영국 시골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루이지 빌라세뇨르Rhuigi Villaseñor는 문득 이번에 선보일 시즌을 넘어 그 이후에도 자신의 비전과 가치를 모두 알릴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사업 전반에 걸친 책임감과 루드의 뿌리를 다지는 동시에 브랜드가 후드 티와 농구 반바지에서 벗어나 그 이상의 것을 선보여야 했다고 말한다. 아이비리그에서 볼 법한 슬림한 레터맨 재킷과 넉넉한 청바지, 보머 등 스트리트웨어와 테일러링 룩이 어우러지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컬렉션을 선보였다. 가방을 들고 있는 모델 외에 모든 모델이 재킷 혹은 팬츠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찔러 넣고 당당히 걸었다. 마치 루이지 빌라세뇨르의 당당함을 대신 표현해 주듯 말이다. LEE SEUNGYEON
‘알잘딱깔센’의 표본. SON MINKYUNG
루드의 설립자 루이지 빌라세뇨르는 패션 디자인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2015년 이 레이블을 만들었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새로운 에스테틱을 선보였다. 여유로운 미국식 아이코노그래피 스타일은 영국 교외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변형된 스타일로 완성했다. 스타일을 재창조함으로써 브랜드를 더욱 확장할 수 있다고 표현했다. LEE JIWON
GMBH
GmbH는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전개하는 패션 브랜드다. 2016년에 디자이너인 서하트 아이식Serhat Isik과 사진가 베냐민 알렉산더 휴즈비Benjamin Alexander Huseby가 설립했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만큼 클럽 문화와 테크노 음악, 언더 컬처, 스트리트웨어를 접목한 의상을 선보인다. GmbH를 검색하면 ‘유한회사’라고 나오는데, 문자 그대로 ‘유한책임회사’를 의미하고자 브랜드명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무제 국가’를 주제로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중동 국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아라빅 스타일의 룩을 위주로 전개했으며, 이는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LEE SEUNGYEON
무제 국가 하면 법도 질서도 없을 것만 같은데 사려 깊은 방식으로 차분하게 쇼를 풀어낸 점이 인상 깊었다. 이 세계관 안에서는 적어도 뜨거운 분노와 욕망은 없어 보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다큐멘터리 <사마에게>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전쟁 통에서 사마의 엄마가 불러준 자장가가 귓가에 맴돈다. SON MINKYUNG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피스는 다름 아닌 흘러내리는 듯한 수박을 프린트한 티셔츠다. 이 수박이 팔레스타인 연대의 상징으로 작용했다. 그들은 자신의 플랫폼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들도 편안하게 이야기할 상태는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예술처럼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려야 한다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두려울 수 있는 상황에서 한발 앞서 나간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LEE JIWON
Text Ahn Doohyun, Hyun Junghwan, Keem Hyobeen, Kwon Sohee, Lee Jiwon, Lee Seungyeon, Park Kiho, Park Soeun, Son Minkyung
Art Lee Sanghyeon
MAGLIANO
말리아노는 2024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페미니스트이자 레즈비언인 시인 파트리치아 카발리와 이탈리아 배우 안나 마그나니, 독일의 개념미술가 하네 다르보벤을 언급하며 중립적인 여성성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이분법적 고정관념으로부터 옷장을 해방시키자는 것.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을 서로 겹치는 요소로 취급하며 이분법적인 개념을 벗어난 유일한 디자이너’라고 설명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퀴어의 아이콘이라며 ‘레오나르도, 그는 우리 중 한 명입니다’라고 적은 그래픽을 선보였다. 인간의 어떤 고질적인 관점과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사회적 고정관념을 깨는 것. 루카 말리아노가 외치는 해방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채웠다. AHN DOOHYUN
계단이 있는데 오르지 않고 내려온다. 수직에서 수평이다. 1980년대 이탈리아 반체제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세심한 컷과 장난스러운 프린트, 대담한 테일러링으로 이른바 이탈리아 전통 스타일에 반기를 드는 이 브랜드의 이름은 말리아노다. 동명의 브랜드 디렉터 루카 말리아노는 교황의 직할 도시이자 세계 최초의 대학이 설립된, 부르주아의 도시 볼로냐에서 태어나 되레 반부르주아적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 그건 그의 성정체성과 비관습적 성향과 관련 있어 보인다. 말리아노는 줄곧 반대와 항의, 혼돈, 순응하지 않는 정신을 담아 컬렉션을 구성한다. 중요한 건 그 방식의 기저에 사랑과 친밀함이 깔려 있다는 사실. 그런 신념 앞에서 성별과 나이, 계급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KWON SOHEE
이건 연극이다. 모델들이 계단을 한 칸 한 칸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내려올 때 Oxhy의 미공개 음악이 흘러나오며 대비가 강조된다. 천천히 내려오는 걸음걸이, 점점 빨라지는 비트,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표정들을 보며 ‘아, 이건 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입장할 땐 혼자서, 퇴장할 때 다 같이, 무언가 위로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다 똑같다고. 다르지 않다고. 어쩌면 혼자가 아닌 우리일 수도. 결속력과 공동체에 대한 그의 이야기다. LEE JIWON
ACHILLES ION GABRIEL
2019년부터 캠퍼와 캠퍼랩의 디렉터를 맡고 있는 아킬레스 이온 가브리엘의 개인 브랜드다. 테일러링과 가죽, 카고, 데님이 적절히 섞인 이번 첫 컬렉션은 무엇보다 디렉터의 괴팍한 유머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슈즈 브랜드의 디렉터를 겸임하고 있는 그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든 룩에 비슷하게 날카롭고 메탈릭한 부츠를 매치했다는 점에 주목하면 좀 재밌다. 물론 옷을 입고 거니는 그 태도는 제각기 다르지만. 클래식이냐 스트리트냐, 여성복이냐 남성복이냐 논할 필요는 전혀 없을 것 같다. KWON SOHEE
길게 늘어진 벨트와 뒤로 숨긴 꽃다발. 평화와 고요함을 사랑하는 그가 완성한 반항적이면서도 구조적인 디자인. 얼마나 펑크하고, 얼마나 섬세한지. 젠더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아무도 꺾을 수 없는 그의 고집과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는 그의 믿음. 캠퍼랩에서도 볼 수 있었던 그의 시그너처 페인팅 레더와 송치, 그레이 블루 컬러까지. 컬렉션에서 선보인 부츠 팁에 적힌 문장 ‘Move Bitch’. 그리고 2012년부터 쉬지 않고 패션에 관한 열정 하나로 달려온 아킬레스 이온 가브리엘. 꽃다발은 그간의 열정에 보답하는,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찬사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AHN DOOHYUN
불길 속에서 “나 살아 있어”라며 당당히 걸어 나오는 외침. SON MINKYUNG
그는 자신을 신발 디자이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메이커라고 칭한다. 디자인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설계 과정을 이해하는 사람은 몇 안 된다며. 전주가 끝나가며 ‘Beep Beep You Sad F**k’가 흘러나온다. ‘I wish I could, but I don’t want to.’ 모델들이 앞으로 나와 회전할 때마다 스타일리스트한테 스타일링을 받지 않은 나는 이런 식으로 입어. 그래도 돼.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LEE JIWON
S.S DALEY
계속해서 이 소년이 변함없이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할 것이다. 멀쩡해 보이지만 어딘가 헝클어진 모습으로. PARK KIHO
해리 스타일스가 맥시 드레스와 슈트를 입은 채 <보그> 역사상 최초로 남성 단독 커버 모델을 장식했을 때, 젠더리스이거나 젠더 플루이드이거나 젠더 뉴트럴이거나 굳이 따져 묻지 않아도 뭐든 꼭 여성이니 남성이니 구분하는 시대는 이미 구닥다리 같았다. 남자의 치마를 보고 첨단이라 호들갑 떨기도 민망했다. 같은 해 해리 스타일스는 여봐란듯이 스티븐 스토키 달리라는 무명 디자이너의 졸업 작품 중 몇 가지를 입고 ‘Golden’ 뮤직비디오에 등장한다. 그러고는 올해 초 스티븐 스토키 달리의 S. S. 달리에 해리 스타일스가 직접 투자를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의 말마따나 “패션 산업은 최고의 풍자이자 최악의 풍자, 가장 매혹적인 비극이자 가장 매력적인 드라마다”라는 인식 아래 한없이 가볍고 나쁘다가도 웃고 좋을 수밖에 없는 스타일을 제시한다. KWON SOHEE
루이스 깁슨Louis Gibson이 제작한 추상으로 표현한 침대 프레임 조각품은 재활용 목재를 이용해 만들었으며 피렌체 현지에서 작업했다고 소개했다. 총 8개이고, 마치 기숙사의 공동생활 경험을 표현한 말 그대로 ‘엘리엇의 방’으로 제작됐다고 한다. 벙크베드를 연상시키며 기숙사의 멤버로 공간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쇼에 흘러나오는 드라이클리닝의 ‘Stumpwork’는 베스트 레코드 패키징으로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플레이리스트 제목은 전부 영국 문화 그 자체다. 이 둘의 조합이 어우러지면서 진정한 영국다움이 묻어난 듯하다. LEE JIWON
이번 쇼를 보며 영화 <솔트번>이 떠올랐다. 그러고는 펠릭스가 자신의 대저택에서 휴양을 즐기는 장면이 스쳐 지나가며 나는 올리버 퀵이 된 것처럼 쇼에 나오는 옷을 모두 내것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SON MINKYUNG
GUCCI
1994년에는 톰 포드, 2006년에는 프리다 지아니니, 2015년에는 알레산드로 미켈레, 2023년에는 사바토 데 사르노가 구찌의 헤리티지를 고유한 시선으로 새롭게 해석하며 구찌오 구찌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구찌는 지난 9월에 선보인 사바토 데 사르노의 첫 쇼 ‘미러링’ 버전을 올 1월에 새롭게 선보였다. 룩의 안감에도 본딩 레더를 사용한 것이 인상적이다. 실크 초커, 스카프, 크리스털 칼라와 베스트, 메탈 네크리스 같은 독특한 아이템을 적극 활용한 것이 특징. 마크 론슨Mark Ronson이 제작한 ‘Masculinity’ 사운드트랙으로 쇼의 아이덴티티를 높였다. LEE SEUNGYEON
사바토 데 사르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됐을 때, 그가 ‘다시’라는 뜻의 ‘앙코라Ancora’를 말할 때 그 역시 어떤 시절을 다시 꺼내 들고 열망하고 있음을 알았다. 낮은 허리선, 깊은 네크라인, 메탈릭 장식, 운명인지 우연인지 돌고 도는 구찌의 바이오그래피. 주목할 점은 노골적으로 타인에게 매력을 발산한 톰 포드와 달리, 사바토 데 사르노는 보다 그 자신이길 바라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나다움’이 시대정신으로 자리한 지금, 구찌가 다시금 섹시해 보인다면 그건 바로 사바토 데 사르노의 자기 확신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태도는 곧 스타일이니까. KWON SOHEE
사바토 데 사르노의 첫 번째 남성복 컬렉션이 밀란에서 공개됐다. 포멀한 디자인의 재킷은 테일러링이 스마트하게 되어 있으면서 가장자리를 깔끔히 처리했다. Hold my hand under the table. Shoulder to shoulder. 듬직해 보이면서 코트 안에 손을 넣은 모습들이 나에게 선을 긋는 모습이 아닌 비밀스럽게 다가가겠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언가 결심한 듯한 표정이 그들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주었다. 가방 색과 어우러진 가죽 장갑은 그야말로 chef’s kiss였다. 쇼 시작부터 끝까지 사랑을 열망하는 감정을 계속 전달했다. ‘Loveher’, ‘Masculinity’, ‘Late Night Feelings’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Ancora’까지. LEE JIWON
JORDANLUCA
호신용으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강렬한 스파이크 장식의 백은 룩에 펑크 무드를 한 방울 더해 만들었다. 오버사이즈 숄더 재킷과 드레스의 매치는 전복되는 느낌을 주며 컬렉션에 재미를 주었다. 이처럼 흐르는 실루엣의 드레스와 레더 소재의 조화뿐 아니라 데님과 슈트, 레더와 도트 무늬 등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의 조화가 컬렉션을 가득 채운다. LEE SEUNGYEON
처음 마주한 것은 신체 부위가 프린트된 헬륨 풍선이었다. 거대한 실루엣의 재킷과 레깅스의 조합, 퇴근 후 클럽으로 향하는 비즈니스맨, 하늘까지 닿을 만한 모히칸. 어떤 파티를 상상하든 그 이상.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기엔 이미 너무 충분하지 않나. AHN DOOHYUN
그치. 그치. 피곤에 절어 있는 나의 동년배들 참 멋있지! SON MINKYUNG
아티스트 도미닉 마이엇Dominic Myatt이 디자인한 1500개의 풍선이 손님 사이에 모였으며, 컬렉션의 파격적인 선언문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척 팔라닉Chuck Palahniuk의 소설 <Not Forever, But For Now>에서 인용한 내용을 활용했다. 깨지기 쉬운 것이 부서지면 모두가 긴장을 풀 수 있다. 헤어 스타일링을 담당한 앤서니 터너Anthony Turner가 조던루카의 룩을 완성해 주었다. 악동 같은 모습을 더해 줬달까. 1월 11일에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온 패션쇼 티저의 훅에 나도 걸렸다. 처음엔 풍선을 따라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데 영상을 보니 그 공간을 설명하고 싶어 한 듯하다. 그 안에 있는 메시지를. LEE JIWON
SIMON CRACKER
잠들기 직전 마법의 순간으로, 색은 물론 초점, 의식까지 흐려지는 순간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이런 환상적인 순간을 컬러로 포착해 컬렉션에 담아냈다. 모델들의 의상은 때로는 불투명하고 눈을 부릅떠도 희미하다. 옷과 귀, 목에 매달린 진주는 마치 창가에 비치는 달빛처럼 반짝인다. 몽환적인 사운드트랙에 귀를 기울이면 어느새 우리도 시몬 크래커의 숙면을 엿보게 된다. 정신없는 세상에 대한 소리 없는 외침. AHN DOOHYUN
셔링 가득한 원단을 크롭트 니트에 조합하고 바지의 벨트 선을 따라 입체감이 돋보이는 자투리 천을 더했다. 그러나 이 같은 키치한 요소 위에 전통적인 재킷 실루엣은 그대로 살려 두었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패션 DNA를 반영했음도 확인할 수 있다. LEE JIWON
필리포가 말한 “반란은 반드시 소음을 내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닌, 오히려 조용함과 반성에서 더 많이 나온다”는 것을 명심한다. 친절과 겸손을 겸비한 새로운 혁명을 목표로 아자, 아자! SON MINKYUNG
PRADA
미우치아 프라다가 패션이나 건축이 아닌 정치학을 전공했다는 점에서 그의 컬렉션은 다중적 함의를 지닌다고 믿는다. 가죽 상품으로 시작한 브랜드의 심벌이 가죽 가방이 아닌 낙하산이나 텐트 같은 군용품의 재료인 포코노 나일론으로 만든 ‘나일론 백’이라는 사실. 이 밖에 군복형 재킷과 미니멀 코트 등 값비싼 명품이지만 치장보다 실용에 가까운 아이템 구성. 미우치아 프라다의 프라다는 무엇보다 통념에서 벗어나며 나름의 혁신을 계속해 이뤄간다. 2020년 질샌더와 디올, 캘빈클라인을 섭렵한 라프 시몬스를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들인 것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이번 컬렉션 역시 겨울과 무관한
아이템과 팔레트로 또 한 번 상식을 깬다. 이는 예고된 일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특히 질샌더 시절 라프 시몬스가 브랜드의 시그너처인 미니멀리즘에 안주하지 않고 원색과 네온 컬러를 넘나들며 질샌더만의 우아함을 그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다는 점을 미뤄 볼 때 그런 라프 시몬스의 진보가 프라다에도 불고 있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무차별적 상식의 세계에서 프라다 같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되었을 때 중요한 건 어떻게 반응하냐다. 이번 시즌 갑작스레 등장한 수영모에 당황하지 않기를. KWON SOHEE
2021년 봄/여름 시즌을 맞아 라프 시몬스가 미우치아 프라다 여사와 손을 잡았다. 미우치아 프라다 여사는 여전히 자신만의 리듬을 유지하며 간결함과 절제를 키워드로 브랜드를 잘 이끌고 있고, 하우스 브랜드에 전례 없던 반항, 역동기 유스컬처의 큰 흐름을 이끌던 라프 시몬스가 생동감 넘치는 요소를 더한다. 이번에 비비드한 컬러의 수영모가 그런 의미였을 터. 이들의 컬렉션도 주목할 만하지만 이 둘이 선보이는 프라다 캠페인도, 과거 프라다의 파노라마도 반추해야 할 것이다. LEE JIWON
WHITE MOUNTAINEERING
목적지는 결코 장소가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 PARK KIHO
디자이너 아이자와 요스케가 2006년에 설립한 일본 브랜드. 그는 도쿄 다마 미술대학의 제품 및 텍스타일 디자인과를 나왔으며, 이후에 준야 와타나베를 사사하다 야외 활동에 대한 열정을 패션으로 전환했다. 팬데믹 기간 은둔 생활을 하던 목가적 산장에서 영감을 받아 고독과 예술적 성찰의 정점을 찍었다. 엘리엇 포터와 이시카와 나오키의 심오한 작품에서 정수를 끌어냈고, 그들은 산의 웅장함을 표현해 디자인에 영향을 미쳤다. 마나슬루의 오라가 담긴 이 컬렉션은 산의 아름다움과 정신을 반영하는 깊이감이 느껴지는 색상과 식물 패턴의 팔레트가 특징이다. LEE JIWON
SACAI
아베 치토세가 1999년에 설립한 일본 패션 브랜드. 그는 이세이 미야케를 보며 디자이너로서 꿈을 키웠고, 꼼데가르송의 준야 와타나베 밑에서 일했고, 컬러의 설립자이자 디자이너인 직장 동료 아베 준이치를 만나 부부가 되었다. 과장된 칼라가 달린 트렌치코트에 이어 칼라가 없는 트렌치코트 등 같은 실루엣을 기반으로 디테일을 변주한 아이템을 연달아 보여주는 방식으로 쇼를 진행했다. 특히 이번 컬렉션에서는 재킷의 다양한 디자인 변형이 돋보이는데, 사카이 특유의 곡선이 강조된 소매의 재킷이나 어깨가 치솟은 재킷 등 위트가 느껴지는 아우터웨어가 많이 등장했다. 니트와 울의 조화처럼 다양한 소재의 믹스 매치가 인상적이다. LEE SEUNGYEON
일상적인 옷차림과 고급 패션의 경계를 허무는 콘셉트를 여전히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반팔 티셔츠와 벌룬 셔츠의 레이어링 룩이 신선했다. SON MINKYUNG
통일성과 결속력을 상징하는 유니폼. 형태를 강조하는 단색 팔레트를 선택한 아베 치토세는 균일성에 초점을 맞췄다. 아티스트이자 스트리트 스케이터인 마크 곤잘레스와 협업한 배지를 통해 이를 드러냈다. 부츠는 제이엠 웨스통J.M. Weston과 듀오 협업을 진행했다. 사카이는 항상 다음 협업을 기대하게 한다. LEE JIWON
DOUBLET
더블렛은 디자이너 이노 마사유키와 아티스트이자 패턴 메이커인 무라카미 다카시가 2012년 설립한 브랜드로, 넷플릭스의 UI를 오마주한 공식 웹사이트부터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 선보인 설치미술까지 패션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른 브랜드와 사뭇 다르다. 이노 마사유키는 모드 가쿠엔에서 교육받은 후 미하라 야스히로에서 슈즈와 액세서리 핸들링을 하며 경험을 쌓았다. BoF 5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2018년에 LVMH 프라이즈 위너로 선정되었다. 그간 선보인 룩을 보면 펑크룩 같은 스타일도 많아 눈여겨보고 있었다. ‘카바레’가 이번 컬렉션의 주제였지만, 이노 마사유키는 평소처럼 재미보다는 의미 전달에 힘썼다. 샘플 제작 시행착오를 수만 번 거치기보다는 3D 프린터로 제작해 폐기되는 재료의 양을 줄였다. 카바레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다양한 인간상을 보여주며, 펑크룩과 캐주얼룩을 한데 아우른다. LEE SEUNGYEON
영화 <웜 바디스>의 주인공이 나와 깜짝 놀랐는데, 상의에 프린트된 아이돌처럼 보이는 동양 여자 때문에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이제 서양의 음지 남녀는 일본 애니가 아니라 아이돌로 영역을 옮겨 가는 걸까. SON MINKYUNG
쇼장 입구에선 ‘오타후쿠 소스’와 협업한 푸드 트럭에서 미니 오코노미야키를 제공하는 이색적인 경험도 선사했다. KEEM HYOBEEN
더블렛은 창립자이자 디자이너인 이노 마사유키가 창조한 아방가르드하고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일본 패션 브랜드다. 2012년 일본에서 시작됐으며, 예상치 못한 소재와 독창적인 건축 기술을 컬렉션에 접목한다. 더블렛은 데뷔하자마자 패션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노 마사유키는 2018년 LVMH 프라이즈 젊은 패션 디자이너상을 받으며 글로벌 패션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이번 컬렉션에선 일상생활에 활용되는 기발한 디자인을 많이 접할 수 있다. 낮잠부터 요가 연습까지 이번 패션위크에 유머러스한 바람을 불어넣어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컬렉션 룩 중 마음에 드는 것이 많았다. 9번은 색감에 미치고, 13번은 편안해 보이고, 23번은 타사 브랜드 로고를 낮잠으로 바꾼 위트가 돋보였다. 개구쟁이처럼 주변 사물에 위트를 더하는 마사유키 씨가 더 좋아졌다. LEE JIWON
RHUDE
영국 시골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루이지 빌라세뇨르Rhuigi Villaseñor는 문득 이번에 선보일 시즌을 넘어 그 이후에도 자신의 비전과 가치를 모두 알릴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사업 전반에 걸친 책임감과 루드의 뿌리를 다지는 동시에 브랜드가 후드 티와 농구 반바지에서 벗어나 그 이상의 것을 선보여야 했다고 말한다. 아이비리그에서 볼 법한 슬림한 레터맨 재킷과 넉넉한 청바지, 보머 등 스트리트웨어와 테일러링 룩이 어우러지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컬렉션을 선보였다. 가방을 들고 있는 모델 외에 모든 모델이 재킷 혹은 팬츠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찔러 넣고 당당히 걸었다. 마치 루이지 빌라세뇨르의 당당함을 대신 표현해 주듯 말이다. LEE SEUNGYEON
‘알잘딱깔센’의 표본. SON MINKYUNG
루드의 설립자 루이지 빌라세뇨르는 패션 디자인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2015년 이 레이블을 만들었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새로운 에스테틱을 선보였다. 여유로운 미국식 아이코노그래피 스타일은 영국 교외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변형된 스타일로 완성했다. 스타일을 재창조함으로써 브랜드를 더욱 확장할 수 있다고 표현했다. LEE JIWON
GMBH
GmbH는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전개하는 패션 브랜드다. 2016년에 디자이너인 서하트 아이식Serhat Isik과 사진가 베냐민 알렉산더 휴즈비Benjamin Alexander Huseby가 설립했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만큼 클럽 문화와 테크노 음악, 언더 컬처, 스트리트웨어를 접목한 의상을 선보인다. GmbH를 검색하면 ‘유한회사’라고 나오는데, 문자 그대로 ‘유한책임회사’를 의미하고자 브랜드명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무제 국가’를 주제로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중동 국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아라빅 스타일의 룩을 위주로 전개했으며, 이는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LEE SEUNGYEON
무제 국가 하면 법도 질서도 없을 것만 같은데 사려 깊은 방식으로 차분하게 쇼를 풀어낸 점이 인상 깊었다. 이 세계관 안에서는 적어도 뜨거운 분노와 욕망은 없어 보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다큐멘터리 <사마에게>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전쟁 통에서 사마의 엄마가 불러준 자장가가 귓가에 맴돈다. SON MINKYUNG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피스는 다름 아닌 흘러내리는 듯한 수박을 프린트한 티셔츠다. 이 수박이 팔레스타인 연대의 상징으로 작용했다. 그들은 자신의 플랫폼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들도 편안하게 이야기할 상태는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예술처럼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려야 한다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두려울 수 있는 상황에서 한발 앞서 나간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LEE JIWON
MASU
2017년에 디자이너 고토 신페이가 론칭한 브랜드. ‘-마스’는 일본어에서 존댓말이 결합할 때 붙는 단어로, 옷을 만들 때 브랜드의 가치를 잃지 않고자 ‘-마스’를 브랜드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1992년생인 고토 신페이는 메종 마르지엘라의 1994년 가을/겨울 컬렉션에 충격을 받고 디자이너가 되고자 결심했다. 2024년 가을/겨울 컬렉션은 떨어지는 비가 소년에게 “예스”라고 말했다는 의미의 ‘falling rain said yes to the boy’를 주제로 삼았다. 스트리트웨어에 좀 더 초점을 맞춘 룩이 많이 보였는데, 담배빵이 있는 크롭트 데님 재킷과 라인스톤 플레어 진, 거미줄 패턴으로 뒤덮인 워크 재킷이 인상적이다. 아티스트 베르디가 컬렉션에 참여해 위트를 더했다. LEE SEUNGYEON
별은 은유의 역할을 한다. 바로 고통. 새틴 패딩 재킷은 붕대를, 스터드는 딱지를 연상시킨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고요하고 확실한 존재들. 나는 이번 컬렉션에서 그가 치유 과정에 있다고 감히 판단했다. 비가 내리지만 귀엽고, 외롭지만 사랑스럽다고. 그와 대비되는 런웨이에 보이는 풍선의 일러스트레이션은 베르디의 작품이다. 배경에서도 귀여움 한 스푼이 추가된다. 특히 13번 룩이 귀여우면서도 목적지를 모르지만, 하염없이 걸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빗속을 헤매면서 마냥 걸어가는 그런 존재. LEE JIWON
MARTINE ROSE
1월 6일 런던에서 가족과 함께 소소하게 자신의 쇼를 열었는데, 이 패션쇼를 파리 패션위크 중 다시 선보였다. 컬렉션에는 영국 신사가 입을 법한 테일러링 재킷과 코트가 눈에 많이 띄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판초처럼 평범하지 않은 룩이었다. 단순한 스트리트웨어가 아닌 드레이핑과 비대칭 실루엣 등 의상의 디테일에 특히 신경 쓴 모습이었다. LEE SEUNGYEON
과거 서브컬처 특유의 야성미와 당당함을 녹여 낸 듯 보이는 룩과 모델들의 엉성하지만 귀여운 캣워크, 사람들의 환호를 온몸으로 즐기는 태도가 절로 미소 짓게 만든다. 이런 쇼가 더 많이 나왔으면. 역시 ‘유우머’가 최고. SON MINKYUNG
집에서 새 옷을 입어보며 나만의 패션쇼를 여는 듯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하염없이 웃으며 지켜봤다. 조명조차 식구들이 휴대폰으로 비춰주는 것 같았다. 순수하다. 순수한 그 시절을 그리워한 걸까. LEE JIWON
WINNIE
다시 학교로 돌아왔나. 착각했다. 학교 도서관에서 레퍼런스를 찾으며 바닥에 얼마나 앉아 있었나 되돌아봤다. 초대받은 관객들이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웃음을 줬다. 그렇게 조용해야 하는 공간에서 공부나 리서치가 아닌 패션쇼라니. ‘I don’t need to learn how to love.’ 배움의 공간에서 배우지 않고 알 수 있다니, 거만하면서도 멋진 애티튜드다. 이번 컬렉션은 비트 제너레이션인 테드 조앤스Ted Joans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했다. 이드리스 발로건Idris Balogun 사회에서 박탈된 자유에 대한 서사를 이야기하기로 했다. 2018년에 위니를 출시하기 전, 그는 자신의 브랜드는 20년을 입어도 그대로인 바지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열네 살 때 나이를 속이고 새빌 로Savile Row에서 일했으며, 버버리, 톰 포드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다. 새로운 옷을 제작할 때 입는 사람에게 그냥 멋지기만 한 옷이 아니라 그 옷이 어떤 옷인지를 가르쳐주고 싶어 한다.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문화를 가르쳐주고 싶다고. LEE JIWON
WOOYOUNGMI
우영미가 보여주고 싶은 건 융합, 하나가 된 우리였구나. PARK KIHO
서울과 파리를 한데 아우르고자 의상에 새긴 ‘PariSeoul’ 레터링이 특히 돋보인다. LEE SEUNGYEON
1970~1980년대 서울 사람이 외국 유학을 떠나던 시절의 고상함과 단단함이 느껴진다. SON MINKYUNG
오버사이즈 테일러드 코트와 헐렁한 데님 진을 매치해 도시적인 스타일을 서울 특유의 방식으로 융합했다. 컬러 팔레트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서울의 풍경을 담아냈으며, 도시와 어울리는 회색, 감색, 녹색, 갈색을 보여준다. 데님 룩이 특히 눈에 들어오고, 정말 유럽과 서울의 중간쯤인 것 같은 룩이었다. LEE JIWON
NAMESAKE
농구공에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농구공을 프린트한 넥타이와 운동복이 인상 깊다. LEE SEUNGYEON
네임세이크는 다른 의미로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번역된다. 삼 형제와 아버지 사이의 대화다. 2020년대만의 한 도시에 스티브, 마이클, 리처드 셰이가 설립한 브랜드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감사를 표현했다. 네임세이크의 시그너처 룩 중 하나가 농구 저지 톱이다. 이번 컬렉션의 본질은 분주한 군중 속에서 우아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꼼꼼한 계획, 상세하게 작성한 일정, 이러한 게시물로 지배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네임세이크는 성찰의 필요성과 새로운 풍경을 포용하는 용기를 준다. 런웨이를 걷는 모델들에게서 어딘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 포착된다. 그 사이에서 13번 룩이 나를 끌어당겼다. 오묘했다. LEE JIWON
SCHIAPARELLI
대니얼 로즈베리가 재해석한 ‘스키아파-에일리언Schiapar-alien’에서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모델 매기 마우어가 안고 등장한 ‘아기 로봇’이다. 아날로그 시대를 상징하는 컴퓨터 칩, 계산기, CD 등으로 만들어진 아기 로봇. 디지털 밈으로 화제가 된 이번 쇼를 통해 대니얼 로즈베리는 “나의 과거 컬렉션이 인공지능을 만나 미래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을 통해 과거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라고 전했다. 60년 동안 살롱의 문을 스스로 닫았던 스키아파렐리가 현시점에서 건재한 것은 엘자 스키아파렐리를 닮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선보이는 대니얼 로즈베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KEEM HYOBEEN
작품이다. 입장료를 내지 않고도 볼 수 있는 작품. 입장료를 받았으면 좋겠다. LEE JIWON
1930년대 파리를 휩쓸고 1957년 해체를 선언한 브랜드. 스키아파렐리는 이미 100년 전부터 초현실주의와 결합해 예술과 패션의 경계를 흩트려 놓았다. 지금이야 흔한 개념인 컬래버레이션과 트롱프뢰유가 그녀의 작품일뿐더러 피에르 가르뎅과 위베르 드 지방시조차 그녀의 하우스를 거쳐 갔을 정도. 반세기가 흐른 2014년, 토즈 그룹은 수많은 유산을 낳은 브랜드를 다시 건설하기 시작했다. 옛 브랜드의 이름만 내세운 것이 아닌 파격, 과감, 진보라는 정신을 유지한 스키아파렐리는 작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대니얼 로즈베리와 함께 완벽한 부활을 알렸다.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동물 대가리를 단 옷은 논란과 함께 그 주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휩쓸었기 때문. 1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것은 없다. 보석으로 뒤덮인 아기 로봇과 드레스, 에일리언의 척추를 형상화한 주얼리까지. 모든 것은 패션 영토를 더 넓히기 위한 일이었을 뿐. YOON SEUNGHYUN
CHRISTIAN DIOR
미궁에서 빠져나오게 한 아리아드네의 실처럼, ‘오라’라는 키워드에 주목했다. 섬유예술가 이사벨라 두크로트의 작품을 배경으로 색채적이고 구조적인 실루엣이 완연하다. 칼라가 돋보이는 코트, 대담한 컷아웃으로 완성한 와이드 스커트, 레이어링 아이템, 팬츠와 재킷 등의 의상이 차례로 등장하며 구조적인 매력과 우아함을 자아냈다. 일부 의상은 벨벳 소재로 더욱 매혹적인 움직임을 선사하고, 자수 더블 오간자 드레스는 깃털 케이프와 함께 화려한 자태를 선보였다. 이와 어울리는 베이지, 그레이, 화이트, 블랙 등의 컬러 팔레트가 조화로웠던 쇼. KEEM HYOBEEN
이번 컬렉션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형태와 면 트윌 소재를 예상치 못한 반복을 통해 변형한 클래식 트렌치코트다. 런웨이에 등장한 첫 번째 룩에서부터 이를 확인할 수 있다. LEE JIWON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1953년 디올의 ‘프로필’ 컬렉션에 등장한 ‘시갈’이라는 이름의 회색 무아레Moiré 드레스를 발견했다. 므아레란 물결무늬가 새겨진 직물로, 그는 빛의 각도에 따라 넘실대는 그 물결무늬에 매료되었다. 므아레를 활용한 드레스와 슈트, 스커트 등을 선보이며 다양한 변주를 보여준 그는 어떤 화려한 장식도 없이 물결무늬만으로 컬렉션을 풀어냈다. 트렌치코트와 아워글라스 실루엣의 드레스 등 베이지 컬러의 면 소재만을 활용한 룩과 꽃을 수놓은 드레스, 우아한 케이프까지.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이를 위해 완성한 디올 컬렉션. 화려함과 우아함은 별개다. AHN DOOHYUN
GIAMBATTISTA VALLI
미완성의 무한한 아름다움을 담았다. 쇼의 오프닝 무대를 연, 검은 벨벳에 흰 장미를 장식한 드레스는 우아하면서 동시대적 실루엣을 명징하게 드러냈다. KEEM HYOBEEN
이탈리아 패션 디자이너인 지암바티스타 발리는 2005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만들었다. 오트 쿠튀르는 2011년부터 선보였으며, 이후 오트 쿠튀르 분야에서 로맨틱하고 절묘하고 섬세한 디자인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복잡한 자수, 유려한 실루엣, 고전과 현대 미학의 결합이 특징이다. 지암바티스타 발리는 서해안의 편안하고 밝고, 자연스러운 화려함에서 영감을 얻는다. 감성 가득하고 독특한 드레스를 볼 수 있으며, 일부는 얇은 그물로 만들었고, 또 다른 일부는 밝은 색상을 띤다. 드레스 중 상당수는 메종의 코드를 기반으로 제작했다. 실루엣을 통해 감상할 수 있는 꽃과 깃털로 런웨이를 꾸몄다. LEE JIWON
JEAN PAUL GAULTIER X SIMONE ROCHA
장 폴 고티에는 데뷔 50주년을 기념하는 2020년 1월, 은퇴를 선언한 이후 2021년부터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를 게스트로 초빙해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이어가고 있다. 천재 디자이너가 왜 갑자기 은퇴를 결정했는지 궁금했는데, 진정한 가르침을 주는 스승과도 같은 그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이어가기 위한 방침이라고 밝혔다. 여러 디자이너가 각자의 스타일과 목소리로 자신의 디자인을 맘껏 펼쳐 보일 수 있도록 장을 열어주는 장 폴 고티에를 보며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패션이 아닐까 생각했다. 순환. 지속성. 패션이 가지는 의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단어다. PARK KIHO
장 폴 고티에와 시몬 로샤의 만남이라니. ‘됐다’, ‘끝났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머리카락으로 제작한 이어링, 공중 부양을 하는 듯한 투명한 신발, 그리고 장 폴 고티에가 쇼 직전에 모델들에게 선물한 장미를 재해석해 런웨이에 은색 장미를 선보인 시몬 로샤. 시몬 로샤는 장 폴 고티에의 스토리텔링을 잊지 않고 그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오트 쿠튀르가 이 만남의 끝이 아닌 시작점이기를 바란다. 멧 갈라에 꼭 등장했으면 하는 피스들이다. LEE JIWON
장 폴 고티에의 옷을 보며 코르셋의 아름다움은 앞으로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SON MINKYUNG
VIKTOR&ROLF
빅터앤롤프가 “오트 쿠튀르는 우리의 창의적인 실험실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모순, 역설, 유머를 진지하게 쿠튀르에 남기는 데 주목했다. “멋지지만 펑크적인 태도”라고 말했듯 블랙과 누드 새틴 코르셋을 다양한 컷아웃을 더해 선보였다. 이번 쇼의 흐름과 연결성이 좋았고, 구조적인 실루엣으로 완성한 드레스는 여전히 무한한 가능성을 입증했다. KEEM HYOBEEN
로레알 그룹인 빅터앤롤프는 네덜란드 출신 아티스트 빅터 호르스팅Viktor Horsting과 롤프 스누런Rolf Snoeren이 1993년에 설립한 아방가르드한 브랜드다. 1998년 첫 번째 오트 퀴튀르를 전개했으며,초현실적 대조가 주입된 도발 정신을 표현한다. 이번 컬렉션에는 총 28개 룩을 선보였으며, 영화 <가위손>을 연상시키는 룩과 함께 음악이 흘러나온다. 갈기갈기 가위로 자른 듯한 커팅이 많이 보이는 가운데 내 눈을 사로잡은 건 14번과 24번 룩이다. 마감이 정교하고 해체주의적이지만 빅터앤롤프만의 터치는 여전했다. LEE JIWON
VALENTINO
오트 쿠튀르의 핵심은 공예다. 그는 실루엣을 가지고 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액세서리와 스타일링을 더해 룩 하나하나가 독특한 개성을 보여줬다. 다채로운 컬러의 캐주얼과 포멀함의 만남이다. 쇼를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마치 알록달록한 사탕을 보며 눈이 돌아가듯이. LEE JIWON
이것은 아마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의 마술. ‘발렌티노 살롱Valentino Le Salon’ 컬렉션은 군더더기 없이 그저 패션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어떠한 서사도 없이 ‘옷’으로만 보여주는 이야기. 전통적인 쿠튀르를 벗어난 캐주얼한 재킷과 코트,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다운 다채로운 컬러 팔레트까지. 여기에 풍성한 스커트와 컷아웃 드레스, 페더 디테일로 그만의 쿠튀르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피날레에 등장한 시폰 드레스는 플로럴 패턴으로 뒤덮여 얼굴에서 표정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모든 것을 투명하게 비추며 발렌티노 오트 쿠튀르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기 마련.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에게 살롱은 귀환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AHN DOOHYUN
지금껏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가 선보인 오트 쿠튀르 컬렉션 중 가장 담백한 옷이 등장했다. 이는 디렉터와 구성원의 팀워크, 그들 간 끈끈한 신뢰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기본을 응용한 옷을 내세우는 데에는 탄탄한 실력과 자신감이 필요하니까. YOON SEUNGHYUN
PEET DULLAERT
피트 둘라에르트는 “우리는 사람들과 그들의 무수한 실루엣에서 영감을 받아 이번 쇼를 전개했다”라고 전하며, 간결한 라인과 비대칭 디테일도 구조적으로 선보였다. 자유로운 드레이핑과 셔링 디테일이 디자인의 주를 이뤘고, 다양한 컬러의 실크, 시스루, 오간자 소재가 어우러졌다. KEEM HYOBEEN
피트 둘라에르트는 깔끔한 라인, 조각 같은 실루엣, 고급 소재에 중점을 둔 현대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패션 브랜드다. 미니멀리즘과 건축학적 우아함의 조화로움을 보여주며 브랜드의 창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피트 둘라에르트는 럭셔리 패션에 대한 혁신적 접근 방식으로 호평받았다. 지속 가능한 관행과 윤리적 생산 방식으로 잘 알려진 피트 둘라에르트는 업계에 책임감있는 패션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창조는 모든 것의 기본으로 매우 개인적인 데다 영감을 주는 삶에서 모티브를 얻는다고. 모델의 날개뼈 사이에 브랜드를 각인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여느 브랜드와 달리 마네킹들이 살아 움직이며 관객에게 옷을 쇼케이스하는 것 같았다. LEE JIWON
FENDI
킴 존스는 “미래의 중심에는 휴머니즘이 있다”라고 말한다. 칼 라거펠트의 펜디를 떠올리며 이번 컬렉션에서 정확성과 감정, 이 두 가지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외적인 부분보다 신체와 원단의 대화에 초점을 맞추며 밝고 화려한 색상의 의상을 제작한다. 그들에게 오트 쿠튀르는 ‘무언가’가 아닌 ‘누군가’다. 걸을 때마다 움직이는 원단이 걸음걸이를 더욱 우아하게 만들어주었다. Poise. Elegant. In appearance and in manner. LEE JIWON
‘시와 현실의 사이’를 주제로 쇼를 선보였다. 매우 정적이고 딱 떨어지는 핏한 룩으로 매니시하지만 그렇다고 페미닌함을 잃지 않은 룩을 만날 수 있다. SON MINKYUNG
ALAÏA
선으로 시작해서 점과 면으로 끝났다. AHN DOOHYUN
영화 <디올 앤 아이>에서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사실 라프 시몬스보다는 그 옆의 피터 뮬리에다. 그는 디올에서의 중요한 첫 쇼가 하필 오트 쿠튀르였던 라프 시몬스를 보필해, 유난히 예민하고 까다로운 그와 역시 만만찮은 디올 아틀리에 장인들 간 관계를 차분히 살피며 여러 사건을 해결해 나갔다. 유쾌한 스몰 토크와 가벼운 포옹과 때때로 꽃을 선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한편 쇼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첫 룩이 하얀색이 아닌 검정이어야 한다는 라프 시몬스의 결단에 대뜸 스프레이를 들고 과감하게 흰색 재킷을 칠해 버린 사람도 피터 뮬리에다. 사람과 사안을 대하는 그의 본능적인 접근법이 돋보이던 순간순간들. 피터 뮬리에가 그런 마음과 태도로 알라이아를 탐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제딘 알라이아가 ‘정적인’ 여성의 몸을 예찬하며 조형적으로 바라보았다면, 피터 뮬리에는 ‘움직이는’ 여성들의 몸을 뒷받침하며 지지한다. 알라이아 컬렉션은 더 이상 ‘들러붙지’만은 않는다. 그건 오늘날 여성에 관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이야기다. KWON SOHEE
런웨이가 슬로를 건 듯한 움직임이었다. 뷔로 베타크Bureau Betak의 프로덕션이 디자인에 힘을 실어줬다. 어딘가 차가운 듯하지만 말을 걸면 스스럼없이 반겨줄 듯한 그런 기분. 미래적인 거울 바닥과 로마식 칼럼들의 조화가 모순적이지만 알라이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페미닌하지만 강인한, 고전적이지만 모던한. LEE JIWON
MAISON MARGIELA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피해 알렉상드르 3세 다리 밑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브릿 로이드Britt Llyod의 필름으로 시작된 메종 마르지엘라의 2024년 봄/여름 아티즈널 컬렉션. 곧이어 필름을 뚫고 나온 레온 데임Leon Dame은 극적으로 조인 코르셋과 함께 몸짓으로 이야기한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래스Pat McGrath가 연출한 도자기 메이크업과 겹겹이 쌓아 올린 오간자와 펠트, 몽환적인 컬러가 자아내는 신기루. 우리는 모두 존 갈리아노의 마법에 빠져 1920년대 파리의 클럽과 밤거리를 배회했다, 여전히 비를 맞으며. 어느 누구는 쫓기고, 어느 누구는 사랑을 갈망하고, 어느 누구는 잔뜩 취한 모습. 하지만 하나같이 흥청망청한 그 몸짓으로 말했다. 영원한 프린서플 보이principle boy, 그 자체로 아이코닉했던 패션계의 악동 존 갈리아노가 여기 있다고. AHN DOOHYUN
인체를 과장되게 강조하던 19세기 스타일이 해체되면서 몸을 드러내고 에로틱한 느낌을 더했다. 모두가 똑 떨어지고 깔끔한 패션을 외칠 때 전혀 다른 판타지를 심어줄 수 있는 존 갈리아노 그리고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PARK KIHO
‘Me, myself, and I. My lips are sealed. I’m better on my own. I don’t need your love’라는 가사의 쇼 음악이 반복될 때마다 오히려 사랑을 원하지만, 부정 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만 남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이 상황을. 멀리 있지만 같은 공간에 있었더라면 옆에 묵묵히 있어주고 싶었다. 아무 말 없이. 코르셋을 조일수록 마음의 문이 더 꽉 닫히는 느낌이었다. 언젠가는 그 끈을 풀어 편안하게 깊은숨을 들이마시길. 이 정도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나 자신을 탓한다. 가려. 가리면 적어도 보이진 않으니까, 자신을 세뇌하는 기분이다. 표출하고 싶지만, 말을 삼켜야 하는, 월플라워 같았다. LEE JIWON
보름달 아래에서 목욕하는 알렉상드로 3세. 그가 향한 곳은 파리의 뒷골목, 악취와 꿉꿉함으로 뒤덮인 곳.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본 듯하다. SON MINK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