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가의 마음




곽-스카이의 옷장 속에 켜켜이 쌓인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궤적.

Text Park Soeun
Photography Shin Kijun
Art Lee Sanghyeon
Assistant Lee Jiwon



구멍 뚫린 얄브스름하고 큼지막한 천 가방 세 개 속엔 더스트 백도 옷걸이도 없이 무심히 툭,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0번 아티즈널 피스가 서로 뒤엉켜 있었다. 100벌이 넘는 아카이브 피스의 주인은 곽하늘. 그는 몹시 천연한 태도로 옷을 대하는 디자이너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모습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날것의 본질에 의의를 둔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그 수더분함처럼. 되레 마르탱 마르지엘라를 곰파는 곽하늘만의 순애보적 마음과 집요함만을 듣고, 담고 싶었다.


곽하늘은 뭘 하는 사람인가요.
패션 스타일리스트를 메인으로 여러 아티스트와 비주얼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해요. 소프트 오피스라는 패션 커뮤니티도 운영하죠. 또 DJ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DJ 왕 터프···.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흔적을 좇는 사람이기도 하죠. 왜 마르탱 마르지엘라인가요.
빈티지, 아카이브 제품을 좋아해요. 아카이브와 빈티지는 엇비슷해 보이지만 양 극단에 위치하죠.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빈티지를 소재로 아카이브를 전개했어요. 제가 원하는 두 가지가 공존해요. 어떤 디자이너 옷의 디테일이 눈앞에 아른거려 그 오리지낼리티를 찾아보면 전부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근간이더라고요.


수집한 첫 번째 피스는?
1999년 가을/겨울 아티즈널 페인트 코트Artisanal Painted Coat. 5년 전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구입했어요. 참 신기한 것이 0번 라인의 여성 아티즈널 피스인데도 사이즈가 굉장히 컸죠. 저한테 여유 있게 잘 맞았어요. 대부분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이탈리아에서 생산하는데, 아티즈널 라인은 프랑스에서 만들었어요. 그 차이를 첫 번째 피스를 받아본 바로 그날 알았어요.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어린 시절 “난 꼭 파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싶어요”라고 부모님에게 말했다고 해요. 고이 간직하고 싶던, 그 의미 있는 순간을 태그에 녹여 냈나 봐요. 그럼 곽하늘에게 가장 의미 있는 피스는 무엇인가요.
2005년 가을/겨울 아티즈널 스타킹 스카프 Artisanal Stockings Scarf요. 이 피스는 1950년대 서로 다른 데드스탁 스타킹을 이어 붙여 만들었죠. 너무 소중해서 보관만 하려고 했어요. 어느 날, 큰맘 먹고 두르고 나갔다가 정확히 열 걸음 걷고 집에 돌아갔지만.


정확하네요.
아, 또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요. 어머니가 그 택배 상자를 저보다 먼저 열어보셨죠.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저를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시더라고요. 여자 스타킹을 왜 샀느냐면서요. 바로 그 자리에서 스카프인 걸 보여주니 더는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으셨어요. 하하.


여운이 깊게, 오래 남는 기억도 있을 거예요.
1995년 가을/겨울 컬렉션의 분홍색 페인트 재킷. 3년 전이었어요. 이베이에 그 피스가 처음 올라왔어요. 당시 4000달러.


지금 환율로 540만원대군요.
절반 정도 가격에 오퍼를 넣는 배팅을 택했죠. 그게 승낙됐어요! 그런데 그 당시 카드 문제로 결제를 못 하는 바람에 취소가 되었고, 동시에 차단당했어요. 너무 아쉬워 판매자의 메일과 개인 SNS 계정을 찾아 연락을 취했는데 4000달러가 아니면 절대 판매하지 않겠다고 단언하더라고요. 그래도 끈질기게 연락했어요. 결국 4000달러를 줘도 제게는 팔지 않겠다고 또 한번 쐐기를 박더라고요.


그럴 땐 어때요.
그 후로 1년이 지났을까? 옥션에 같은 매물을 올리더라고요. 포기할 수 없었죠. 울며 겨자 먹기로 4000달러에 몇 달러를 더했어요. 판매자가 제게 끈질기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누군지 밝혔어요. 결국 4000달러가 넘는 그 옷을 보내면서 같은 시즌의 분홍색 벨트와 에이즈-저지 톱 초판을 선물로 보냈더라고요.


집요함이 판매자의 마음을 움직였네요. 그 집요함으로 애타게 찾고 있는 피스가 또 있겠죠?
물론이죠. 1994년도 가을-하이버 인형의 옷장 컬렉션 피스요. 최근 발매한 자이언티의 ‘모르는 사람’에 스타일리스트로 참여했어요. 배우 최민식이 입고 나온 바지와 같은 원단으로 된 재킷이에요. 별다른 특징이 없어 보이겠지만, 마르탱 마르지엘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바로 알 수 있는 디테일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죠. 그래서 찾고 있어요. 크디 큰 단추처럼 보이지만 클립 같은 형태로 인형의 옷을 구현했죠. 바지엔 말도 안 되는 크기의 지퍼 람포를 사용했고요. 도쿄 아카이브 스토어에서 작품으로만 만날 수 있어요. 그 재킷을 입고는 마음을 굳혔어요. 이 재킷을 결혼 전까지 꼭 찾아 셋업으로 입어야겠다고. 바지는 있으니까 재킷만 찾으면 됩니다!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철학을 읽을 수 있었던 피스가 있었나요.
2002년 봄/여름 컬렉션의 아티즈널 페인트 핀 타이를 보면 마르탱 마르지엘라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어요. 빈티지 타이를 해체하고 핀으로 꿰맸죠. 위로 페인트를 더했고요.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아니었다면 이런 피스가 남을 수 있었을까요? 장담컨대 없어요. 더군다나 이걸 만들어 비싸게 팔 생각을 했잖아요. 그 쿨함이 담겨 있어요. 쿨. 솔직하잖아요. 그런 그의 감각을 사는 거죠.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좋아하는 자보, 18세기 가슴에 얹는 레이스 장식이죠. 영화감독 아리 에스터의 미장센을 작가 노상호의 그래픽으로 재해석해 곽하늘만의 자보도 제작했어요.
맞아요. 자보,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액세서리죠.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1989년도 첫 시즌부터 자보를 이채롭게 활용했어요. 목과 가슴 그리고 손목에 이리저리 묶는 것처럼요. 1989년에 제작된 자보를 시작으로 하나둘씩 사 모으면서 애착을 갖게 됐어요. 원색 티셔츠 위에 툭 걸친 자보 하나로 그림이 완성되거든요.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궤적을 기록한 책 20권을 보유하고 있다고요.
네, 그중에 한 권을 뽑자면,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i-D> 매거진만을 위해 특별 제작한 2006년도 9월호.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자신의 손과 눈을 거쳐 뷰파인더에 담은 소파, 자동차를 볼 수 있어요. 평범한 것도 놀라운 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브랜드 창립 20주년을 맞은 해, 그는 홀연히 작업실을 떠났죠.
2009년이었죠. 그해 저는 열 살짜리 초등학교 저학년 꼬맹이였어요. 마르탱 마르지엘라를 처음 접한 건 그가 은퇴를 선언한 지 한참 지난 후죠. 꼬맹이 시절,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마르탱 마르지엘라를 좋아했다면 그를 애도하는 것과 별개로 아티즈널을 더 파이팅 넘치게 사 모았을 것 같아요. 아, 근데 잘 떠났다고 생각해요, 솔직하게. 멋질 때 떠났어요.


2009년 이후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메종 마르지엘라 피스도 수집하나요.
아니요.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에르메스 컬렉션은 두 피스 정도만 소장하고 있어요.


마르탱 마르지엘라만을 향한 올곧은 일편단심이 와닿아요. 결국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음, 마르탱 마르지엘라처럼 잘 알려진 디자이너는 몇 다리만 건너면 어떤 사람인지 유형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요. 성격과 성향이 어떤지. 기사도 많고요. 그런데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어린 시절 찍힌 몇 장의 사진을 제외하곤 들리는 소문조차 없어요. 다큐멘터리 <위 마르지엘라>에서 들리는 목소리, 말미에 나오는 손이 전부죠. 그래서 더욱 경이로워 보여요.


언젠가 그를 만나는 날이 올 수도 있어요.
파리에 있는 커피숍이면 좋겠어요. 주말이면 더 좋고. 햇살 따듯한 테라스에서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는 순간, 옆자리 아저씨가 마르탱 마르지엘라였으면 좋겠어요. 하루 종일 이야기하게요.


나누고 싶은 말이 많은가요.
<데이즈드>와 나눈 이 인터뷰를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볼 거예요. 얼굴을 기억하고 싶어서요.


언젠가 마르탱 마르지엘라 피스로 가득한 전시를 계획하고 싶다고 했죠.
여전한가요. 아직 멀었어요, 진짜 그날이 올지. 저는 상상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