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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청소부로 들어가 다른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나선 소피 칼Sophie Calle의 포토 시리즈 ‘더 호텔’. 다양한 사람들의 물건을 바라보며 묘사하고 추측해 본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우리만의 해석을 해보기로 했다.

Text & Photography 피비(Phoebe, 이지원), 세라(Sarah, 최연경)
Art 세라(Sarah, 최연경)

Sarah 소피 칼의 ‘더 호텔’ 포토 시리즈는 길거리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 남자를 따라가던 중 더 이상 쫓을 수 없는 호텔로 들어가 버리면서부터다. 누구나 한 번쯤 호텔에서 ‘어젯밤, 이 침대를 누가 썼을까’ 상상한 적이 있을 것이다. 소피는 이 궁금증을 직접 해결한다. 25호의 게스트는 그날 입에 들어간 모든 것을 일기로 기록했다. 먹는 행위에 대한 집착은 버림받은 유년 시절에 대한 트라우마일까, 아니면 20단계 스킨케어 루틴과 8팩 복근을 가진 자신의 이미지에 집착하는 아메리칸 사이코의 ‘시그마 메일’일까? 소피 칼은 버려진 물건을 찾아 그 물건의 주인을 상상하며 사진으로 기록한다. 우리는 소피의 사진을 통해 낯선 사람에 대한 환상을 품고 서서히 사랑에 빠진다. 상상 속에서 사랑에 빠지는 것이 더 쉬우니까. 또 다른 룸에서는 완벽하게 다림질된 잠옷을 발견했다. 한 번도 입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왜 한 번도 안 입었을까? 왜 그대로 두고 갔을까? 이런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목표는 완벽한 상상을 하는 것. 어느덧 상대에 대한 호기심이 잦아들며 완벽한 상상을 하는 나 자신에게 빠져든다. 천편일률적 사회에서 상상을 유발하는 인간을 만난다는 것은 큰 선물이다. 여지껏 살아온 ‘나’에게서 벗어나 타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기회. 이 기회를 실현시킬 차례다.

Phoebe 소피 칼은 저돌적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지독하게 파헤친다. 소피 칼의 포토 시리즈 중 ‘28번 방’에서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투숙객이 묵은 방에 매일매일 들어가 묘사한다. 월요일, 혼자만 잔 흔적이 있는 침대. 화요일, 두 개의 침대를 사용한 흔적. 수요일, 잠옷은 여전히 같은 곳에
놓여 있다. 목요일, 그들은 갔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소피 칼은 의자에 바보같이 놓인 잠옷 바지의 잔상을 그리며 그들과 작별 인사를 한다. 흔적 없는 삶을 원하는 이도 있지만, 나는 어떻게 해서든 흔적을 남긴다. 입꼬리 옆에 묻은 빵가루, 주머니 속 꾸겨진 영수증, 인화한 옛날 사진, 버리지 못하는 옷, 같이 만든 열쇠고리. 흔적을 남기고 싶은 이유는 잊히지 않기 위해서인지, 존재가 사라지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그리워하는 사람의 흔적이 없다면 서글프게 울 것 같다. 내 세상에서 없어진 존재니까. 그는 외친다. 나를 기억해 달라고. 너를 기억해 달라고. 나는 이 외침에 부응하며 흔적의 기억을 재조각한다.